그거 아세요? 지난 12일 개봉한 <브루탈리스트>가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8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9일(기준) 누적 관객 3만 명을 기록한 이 영화의 기록은 참으로 놀라운데요.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러닝타임. 무려 215분, 3시간 35분입니다. 도파민 과다 쇼츠 영상이 넘치는 시대에 3시간이 넘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것 자체가 기적인 셈이죠. 재미있는 건 이 영화에서는 낯설지만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은 ‘그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터미션’입니다.
인터미션을 살펴보기 전에 <브루탈리스트>는 어떤 영화인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영화는 전쟁의 상처와 흔적에서 영감을 받아 혁신적인 디자인을 창조해 낸 천재 건축가 라즐로 토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로서 겪는 아픔과 이를 건축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의 인생은 그 자체로 흡입력을 갖습니다.
오는 3월 2일(현지 시각)에 열리는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올해도 쟁쟁한 작품들이 선의의경쟁을 벌일 예정인데요. 그중에서도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품이 <브루탈리스트>입니다. 이 영화는 작품상을 비롯해 총 10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제81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인 은사자상은 물론,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등 전 세계 유수의 시상식과 영화제에서 83개 부문 수상 및 272개 부문 후보라는 기록만 봐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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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일은 러닝타임이죠. 3시간 35분 동안 극장 좌석에 앉아 영화를 보려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손쉽게 집에서 OTT로 영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상황에서 극장에 가는 것 자체도 대단한 일인데, 극장 이동시간까지 합해서 약 5시간을 할애할 정도의 노력을 기하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작품성, 유력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등 영화는 극장으로 관객들을 부르는 요소가 많습니다. 여기에 ‘인터미션’ 또한 강력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인터미션은 뮤지컬, 오페라 등 긴 러닝타임을 가진 공연에서 갖는 쉬는 시간을 의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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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탈리스트>를 통해 영화 극장에서 인터미션을 만난다는 건 새로운 경험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인터미션이 처음은 아닙니다.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라비아 로렌스> 등 과거 할리우드 대작 영화 상영 시 인터미션을 가졌습니다. 최근에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해피아워> 등 러닝타임이 긴 예술영화 경우 10~15분 정도의 인터미션이 존재했습니다.
이번 인터미션이 특별한 건 연출자인 브래디 코베 감독이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이를 염두하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인터미션을 기점으로 전반부는 희망을 품고 미국 사회에 살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을, 후반부는 실패와 좌절을 겪지만 끝내 예술로서 승화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만큼 인터미션은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닌 극 중 새로운 이야기를 여는 문 역할을 하는 셈이죠.
인터미션의 부활은 OTT 콘텐츠의 영향력과 어느 정도 연관 있다고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OTT 콘텐츠에 익숙해져 긴 호흡의 콘텐츠를 잘 보지 못하는 젊은 관객들의 관람 패턴과 시청 습관이 인터미션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라고 입을 모았는데요. 감독은 다수의 인터뷰를 통해 쉬는 시간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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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츠의 범람, OTT 콘텐츠의 영향력이 큰 상황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치부되는 극장 영화의 새로운 상영 방식이 젊은 층에 얼마나 많이 소구 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남과 다른 경험을 삶의 가치와 의미로 받아들이고 이를 SNS로 퍼뜨리는 성향이 강한 이들에게 ‘인터미션’은 그냥 흘려보내는 쉬는 시간은 아닐 터. 인터미션을 경험했다는 콘텐츠가 SNS 피드를 장식한다면, 머지않아 과거 3시간 넘는 영화들이 극장에서 재개봉을 하지 않을까요? 인터미션과 함께 말입니다.
출처: 유니버셜픽쳐스, 맥스무비, SBS연예뉴스, 네이버 영화